결국 2월 입법전쟁은 한나라당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100일간의 시간을 벌었다는 것 외에 민주당이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것도 100일 뒤의 상황이 현재의 상황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암울한 가정도 포함하고 있기에 더욱 씁쓸한 결말이다.
경제관련 쟁점법안도 다 표결처리해 통과시켜주기로 한 민주당이다. 그나마 마지막카드였던 언론관련법 마저 지키지 못했으니 민주당으로서는 어쨌거나 할 말이 없게 되었다.
민주당이 이렇게 막판 상황까지 몰리게 된 이유는 여야 사이에서 교묘히 줄타기의 묘수를 보여준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있다고 할 것이다.
1일 밤 김 의장이 여야에 중재안을 내놓을 때까지만 해도 김 의장은 어떻게 해서든지 직권상정을 막고 여야 합의로써 국회를 정상화시키고자 노력했다고 보여진다. 국회의장으로서의 중립성도 지키면서 중재자로서의 역할까지 훌륭히 소화해 낼 수 있었다.
이후 2일 새벽 여야 대표들은 김 의장의 중재안에 ‘잠정합의’한 후, 민주당은 바로 의총을 열어 중재안을 수용키로 하였고, 한나라당은 2일 오전 최고위원단이 서울의 모 호텔에서 김 의장과 회동을 가졌다.
아마 이 시점에 한나라당과 김 의장 사이의 모종의 딜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한나라당 쪽에서는 김 의장에게 한나라당의 내부 강경파들에 의한 중재안 수용불가 방침을 전달하며 언론관련법을 포함한 쟁점법안을 직권상정해 줄 것을 압박하는 것처럼 상황을 연출했다.
그러나 김 의장의 이미지를 실추시키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묘책을 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바로 ‘벼랑끝전술’의 사용이다.
김형오 의장이 한나라당의 항의방문 이후 1시 40분 경 갑자기 입장을 180도 바꿔 3시까지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조건 직권상정하겠다고 공식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도 언론관련 법을 포함한 직권상정의 뜻을 내비친 적은 있었으나,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 여야를 협상테이블에 앉히려는 목적에서의 ‘으름장’ 정도였다. 그러나 어제의 발표는 민주당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게 하는 ‘협박’과 다름없었다.
교묘히 타이밍을 계산해 ‘벼랑끝전술’로서 민주당을 압박한 것이다.
민주당은 너무 안일했다. 김 의장의 중재안이 사실상 민주당 쪽에 더 기울어져 있어서 안심하고 있었고, 중재 직후 여야 대표끼리 ‘잠정합의’까지 해 놓은 상태에서 김 의장의 ‘직권상정’ 발표가 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이 뒤통수를 쳤다며 분노만 터뜨렸다. 마음을 너무 놓고 있었던 민주당. 누구를 탓하랴?
김 의장은 이로써 개인적으로는 직권상정을 피하고 끝까지 중립성을 지키면서 협상을 이끌어 낸 장본인으로서의 이미지를 지켰다. 물론 뒤로는 한나라당의 손을 확실히 들어주고서 말이다.
이번 협상에서는 한나라당이 자축할 만큼 승리의 협상이었음을 인정한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한 가지 큰 실수를 범했다는 것을 잊고 있는 듯하다.
협상에서 절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은 바로 ‘속내’를 들키지 않는 것이다. 양자 혹은 다자간 협상에서 협상자들은 몇 가지 카드를 내놓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마지막 패를 짐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상대에게 무슨 패를 가지고 있는지 노출되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이번 언론 관련법 통과의 진짜 목적이 재벌이 아닌 조중동 신문사들을 위한 것임을 이미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래서 싸움이 민주당만 불리하게 됐다고 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상대방의 패를 알고 있는 한, 전략과 전술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다.
100일이라는 시간, 이번 협상에서 한심하게 진 민주당이 주도권을 뺏기지 않을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 될 수 있다. 100일 동안 유심히 지켜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