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방북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어제 방북 일정 하루 연장을 신청한 가운데 오늘 또 하루 더 연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방북할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 성사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우리 정부는 계속되는 현 회장의 방북 일정 연장 신청으로 김 위원장과의 면담 자체가 불발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현 회장을 애타게 기다리게 하는 북한의 의도는 무엇일까.
앞서 북한은 클린턴 미 대통령의 방북으로 억류된 미국 두 여기자를 신속하게 석방한 적이 있다.
클린턴의 행보와 비교해 북한에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와 연안호 선원 석방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무능함과 안이함에 국민의 비판이 쏟아지자 뒤늦게 정부는 현 회장을 통한 방북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입장에선 미국과 남한에 대해 확연한 차이를 실감할 것이다.
우선 방북하는 인사의 사회적 신분 차이다. 미국은 전 대통령을 특사로 파견했다. 남한은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했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사업 등 대북사업 관련 현안들을 함께 의논할 필요가 있어 부득이 현 회장의 방북이 결정됐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억류된 사람은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만이 아니다. 연안호 선원들도 있다. 북한으로서는 대북사업을 관장하는 일개 대기업 총수가 아닌 정부의 고위급 인사 파견을 기대하고 이들 모두의 석방문제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를 원했을 가능성이 있다.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니 김 위원장의 지방순회 일정을 핑계로 면담을 계속 늦춰 일부러 남한의 애를 태우는 상황을 연출, 북한의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 하나, 아직은 남북관계 개선이 시기적으로 이르다고 판단할 수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에서 북미관계 진전을 위한 어떤 메시지가 오갔는지는 아직 판단할 근거가 없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른 언론보도에 의해 미국이 구두로 오바마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만 전해지고 있다.
북미관계 진전 속도와 방향제시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남북관계 개선에 속도를 낼 필요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통미봉남의 원칙이 우선이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에서의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실익도 없는 부분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을 터다.
따라서 현 회장과의 면담 일정을 최대한 늦춰 면담 불발 가능성을 높인 다음 실제로 면담을 불발시키거나, 면담을 해도 협상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면담시 김 위원장과의 면담이 아닌 다른 고위급 인사로 대체될 가능성도 있다.
일단 오늘까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면담이 불발되어도 억류된 유모씨에 대한 석방은 약속되로 진행될 것으로 기대되나 문제는 이번 면담 성사와 상관없이 연안호 선원들에 대한 석방과 관련 또 다시 북한과의 협상을 시도해야 하는 부담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남한을 배제한 북미관계 진전이 남한의 협상력 부재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북미 사이에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할 지도 모르는 불안감이 내재해 일단 대북사업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을 꾀한 후 사후관리를 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포괄적으로 보면 대북사업은 이차적인 문제다. 일단 억류된 사람들의 신변을 보장한 후에 미국과의 보조를 맞추며 북한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북미 회담이 급조된 것과 관련한 초조함으로 남북관련 일을 서두르다 보면 자칫 예상하지 못한 덫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부인하지 못할 사실은 우리보다 북한의 협상력이 더 크다는 점이다.
면담이 불발되면 우리로서는 이미지 손상이 매우 클 것이다. 원했던 유모씨의 석방 외에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고 미국과의 급격한 대우 차이로 망신만 당하게 될 처지다.
오늘을 지켜본 후에 더 깊은 분석을 요하겠지만, 우리 정부는 북한을 상대함에 있어 언제나 근본적인 대책을 먼저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